연명의 방식

[도검난무] ~도스테 입문 안내~

혜화 2019. 5. 6. 22:39

도검난무의 연극 컨텐츠 도스테의 친구들 영업 겸 안내용으로 번역했던 소개글을 옮겨둡니다.

※참조: 니코니코 대백과

 

무대『도검난무刀剣乱舞』란, DMM게임즈(DMM.com)와 니트로플러스의 도검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도검난무」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작품군을 말한다. 통칭, 도스테刀ステ(とうすて)。

첫 공연부터 이야기의 완결편이 되는 비전까지 가상의 특정 혼마루를 배경으로 한다.(시간대는 다르지만 동일한 세계관)

그리고 매 공연마다 도검들과 인연이 있는 옛 주인들(역사상 유명인물들)이 등장한다.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개요]
2015년 6월, 뮤지컬 도검난무와 함께 제작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제작은 마벨러스.
「겁쟁이 페달」, 「박앵귀」를 시작으로 유수의 2.5차원 작품을 제작해 온 실적이 있다.
뮤지컬과는 달리, 도스테 쪽은 스트레이트 플레이 방식이다.(연극 only, 단 오프닝, 엔딩은 합창이 있음.)

연출, 각본은 스에미츠 켄이치末満健一.
무대「TRUMP」시리즈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TV애니메이션「볼룸에 어서오세요ボールルームへようこそ」 시리즈 구성, 각본을 담당했다.

 

2019년 5월 현재까지 공연된 각 무대들의 개요는 아래에 기재.

 

...더보기

 舞台『刀剣乱舞』~虚伝 燃ゆる本能寺~ 
무대 「도검난무」 ~허전 불타는 혼노지~ 

http://www.marv.jp/special/toukenranbu_1/

★초연 2016년 5월 : 도쿄, 오사카 
재연 2016년 12월~1월: 도쿄, 후쿠오카, 오사카

주목점: ✨달할배, 하세베의 오하기, 야겐 역 키타무의 위험한 반바지😼

 

시놉시스 
서력 2205년. 
역사개편을 도모하는 「역사수정주의자」가 과거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대적하는 정부는 역사의 수호자로서 「사니와審神者(심신자)」를 과거로 파견한다. 

사물의 마음을 깨우는 사니와의 힘으로 태어난 도검에 깃든 쓰쿠모가미付喪神(도구에 깃든 신령) 「도검남사刀剣男士」들은, 사니와와 함께 역사를 지키는 싸움에 몸을 던진다. 

어느 날, 그들의 혼마루(사니와 주둔지)에 새로운 도검남사가 현현한다. 

후도 유키미츠不動行光──전국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패용하고, 그를 모시던 측근 모리 란마루森蘭丸에게 내려졌다고 전해지는 한 자루이다. 

후도 유키미츠는 노부나가의 애도였던 것에 자부심을 드러내지만, 똑같이 노부나가가 원래 주인이었던 소우자 사몬지宗三左文字, 헤시키리 하세베へし切長谷部, 야겐 토시로薬研藤四郎들과 의견이 잘 맞지 않는다. 

킨지近侍(사니와의 최측근 시중인)에 임명된 야만바기리 쿠니히로山姥切国広는, 후도 유키미츠의 등장으로 평화가 깨어진 혼마루를 개선하고자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와중, 사니와에 의해 天正十年──오다 노부나가가 명을 다한 역사적 사건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출진 명령이 떨어진다.

 

도스테 제 1탄. 무대는 혼노지의 변. 
마왕 오다 노부나가와 연이 있는 검들과 그 인연이 있는 자들, 그리고 미카즈키 무네치카와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를 중심으로 「오다 노부나가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테마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후도 유키미츠와 옛 주인 모리 란마루,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아케치 미츠히데가 품은 갈등에도 초점이 맞춰져, 「역사를 지킨다」는 일의 의의와 그에 대한 번뇌가 그려져 있다. 

센슈락은 일본 전국 및 대만, 홍콩의 극장에서도 라이뷰가 상영되었다. 
2016년 겨울 일부 캐스팅 변경이 있었으나 재연 공연을 실시, 해당 공연 또한 좋은 반향을 얻었다. 
(츠루마루의 경우 도검 뮤지컬 쪽 배우로 캐스팅 변경) 

 

舞台『刀剣乱舞』~義伝 暁の独眼竜~ 
무대 「도검난무」 ~의전 새벽의 독안룡~

http://www.marv.jp/special/toukenranbu_3/

 

★2017년 6월~7월 공연 : 도쿄, 교토, 후쿠오카
주목점: 사이가 좋은 다테 검들🍵😌 타이코가네 사다무네(사다쨩) 역 쇼헤이군의 반바지(앙스테 레오 역), 오오쿠리카라(앙스테 미카 역) 등장.

 

시놉시스
서력 2205년.
역사개편을 도모하는 「역사수정주의자」가 과거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대적하는 정부는 역사의 수호자로서 「사니와審神者(심신자)」를 과거로 파견한다.

사물의 마음을 깨우는 사니와의 힘으로 태어난 도검에 깃든 쓰쿠모가미付喪神(도구에 깃든 신령) 「도검남사刀剣男士」들은, 사니와와 함께 역사를 지키는 싸움에 몸을 던진다.

혼마루에서는, 사요 사몬지小夜左文字가 어쩐지 기운이 없는 모양이었다. 킨지인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고민을 듣고자 하지만, 사요는 야만바기리를 피하려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또한 延享四年으로 조사 임무를 나간 오오쿠리카라大倶利伽羅와 카센 카네사다歌仙兼定는 임무지에서 사이가 악화되고 만다.
오오쿠리카라와 같이 원래 다테伊達가의 검인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燭台切光忠, 츠루마루 쿠니나가鶴丸国永, 그리고 혼마루의 새 동료로 현현한 타이코가네 사다무네太鼓鐘貞宗는, 둘의 불화를 해결하고자 고민한다.
츠루마루가 뭔가 좋은 수가 없을지 아루지에게 상담하자, 아루지에게서는 의외의 임무가 내려왔다.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그런 혼마루를 지켜보고 있다.
한편, 전국시대의 세상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한 천하통일이 완수되려 하는 전국을 근심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다테 토지로 마사무네伊達藤次郎政宗.
천하를 손에 쥐는 자(천하인)의 꿈을 꾸는 마사무네에게, 그와 신의로 맺어진 맹우 호소카와 요이치로 타다오키細川与一郎忠興는, 이윽고 도래할 태평한 시대를 살아갈 것을 종용한다.

마사무네가 천하인이 되는 것은 <이루지 못할 꿈>인가...

어느 날, 도검남사들에게 출진의 명령이 떨어진다.

출진지는, 慶長5年(1600년)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이끄는 동군과,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가 이끄는 서군이 대격돌을 벌인 천하를 나누는 대전 세키가하라의 전투関ヶ原の戦い.

그곳에서 도검남사들이 본 것은-?

도스테 제 2탄. 혼노지의 변 재연을 포함하면, 공식 세번째 공연.

2016년 5월에 게임에 실장된 회상 시리즈에 등장한 다테 가와 호소카와 가에 연이 있는 도검들이 등장한다.
7면「延享の記憶」의 회상 시리즈「九曜と竹雀のえにし」에 등장한 다테 가와 호소카와 가, 도쿠가와 가와 인연이 있는 도검(九曜と竹雀組)

타이틀대로, 제목은 「독안룡」 다테 마사무네.
오슈의 패권을 장악하면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 앞에 무릎을 꿇고, 이후 도쿠가와 삼대를 모시게 된 이 인물에 관해서는, 노쇠해서도 천하 제패의 야망을 품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일화가 다수 전해진다.
그 마사무네의 젖형제이며, 그 전 생애를 주군 가문에 바친 측근이자 가신, 카타쿠라 카게츠나片倉景綱.
그리고 마사무네와 교우를 나누며 후세에까지 이어지는 양가의 인연의 시작이 된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忠興.
마사무네의 <이루지 못할 꿈>이 하나의 형태를 가지고 나타났을 때, 본래의 역사에서 일탈한 「세키가하라의 전투」가 나타난다. 역사를 지키기 위해 출진한 도검남사들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고전을 겪은 끝에 충격적인 전개가 이어진다.

회상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카센과 오오쿠리카라의 말다툼.
스스로의 존재 방식에 괴로워하는 사요와, 킨지로서 걱정하면서도 헛발질을 거듭하는 야만바기리.
인간의 몸을 얻은 기쁨을 음미하면서도 혼마루의 생활을 최선을 다해 향유하는 쇼쿠다이키리와 타이코가네.
얼마간 지속된 지루한 일상에서의 해방을 바라며, 매일 새로운 놀라움을 찾아다니는 츠루마루.
그런 그들을 지켜보면서, 뭔가 큰 비밀을 품고도 「언젠가 찾아올 큰 시련을 위해, 이 혼마루를 더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미카즈키.

2017년 7월 14일 센슈락에서는 국내, 해외(홍콩, 타이페이, 타이)에서 라이브 뷰잉을 개최하였다.

 

舞台『刀剣乱舞』~ジョ伝 三つら星刀語り~
무대 『도검난무』~서전 세 개의 별(삼형제별)검 이야기~

http://www.marv.jp/special/toukenranbu_4/


★2017년 12월: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도스테 제 3탄.
이번에는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혼마루에 오기 전의 이야기」로 전개.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와 사요 사몬지, 헤시키리 하세베가 재등장.

 

🌃外伝 此の夜らの小田原
외전 이 밤의 오다와라

본 공연에 앞서 2017년 11월 오다와라성(카나가와현 오다와라시)의 방문자 100만명 달성 기념으로 개최된 특별공연. 메인 캐스트 전원 등장.

시놉시스
어느 날, 아루지에게서 조사 임무를 명령받은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헤시키리 하세베, 사요 사몬지 세 자루는, 자신들이 도착한 곳이 목적지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곳은 오다와라 정벌 발생 이전의 오다와라.
야만바기리 일행은, 들개 무리에 습격당한 한 남자를 어쩌다 보니 구하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후지와라 사키치. 모리 나가오씨 당주 나가오 아키나가의 명에 의해,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를 벼려낸 도공의 제자였다.
어째서 야만바기리 일행은 이 시대에 도착한 것인가.
오다와라성의 산기슭에서 조우한,
어느 날 하룻밤의 사건
――――

시간대는 허전과 의전의 중간으로, 허전의 다음 편과 의전으로 이어지는 전개 등을 볼 수 있다.
공연 당일에는 안타깝게도 비가 내렸지만(야외공연) 쏟아내리는 빗속에서 펼쳐진 하룻밤 한정의 무대는 호평을 받았다.

※오다와라성: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8B%A4%EC%99%80%EB%9D%BC%EC%84%B1
오다와라 성(일본어: 小田原城) 은 가나가와현 오다와라 시에 있는 평산성이다.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있었던 성으로, 에도 시대에는 오다와라 번의 번청으로 사용되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무로마치 시대
원래는 헤이안 시대 말기, 사가미 국의 호족 도히 가문의 일족인 고바야카와 도오히라 (고바야카와 가문의 시조)의 거관이었고, 1416년 우에스기 젠슈의 난에서 도히 가문이 실각하자, 오모리 가문이 찬탈하였다.
1495년 (단 이후라는 설도 있음), 이즈 국을 지배하는 이세 모리토키 (후에 호조 소운)이 오모리 후지요리로부터 성을 빼앗아, 이후, 호조 가문의 거성으로 되었고, 간토 남부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되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호조 가문의 거성인 오다와라 성을 공격한다. 이에 간토에서 호조 가문과 적대시 한 가문인 우쓰노미야, 사타케 가문등도 히데요시의 편에 서 참진하였다. 일반적으로 오다와라 정벌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히데요시는 압도적인 물량공세로 성을 포위공격하였고, 이와 함께 별동대로 호조 가문의 각 지성을 각개격파하여 고립시켰다. 그 후 3개월뒤, 호조 가문은 항복하였다. 이 공성전 동안 호조 가문 안에서는 “화의냐” “항전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여기에 기인한 고사로 오다와라 효조(小田原評定)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 후, 히데요시는 우쓰노미야 구니쓰나와 함께 시모쓰케 국 우쓰노미야로 군대를 이동시켰고, 오다와라 정벌에 참가한 도호쿠 지방의 여러 다이묘의 처우를 결정하였다. 이로써 히데요시는 일본 전토의 통일을 완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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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ョ伝 三つら星刀語り
서전 세 개의 별 검 이야기
주목점: 만바쨩, 하세베의 투탑 공연. 원제목이 죠덴ジョ伝으로 카타카나 표기를 하는 이유는 본편이 여러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 (동음이의어), 본편 메인 이미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키타카와 나오야군의 미소년 호네바미(앙스테 츠카사역) ^。^♪

시놉시스
혼마루가 아직 만들어져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절.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이끄는 제1부대는 아루지의 명에 따라 <오다와라 정벌>의 시대를 방문했다.

그곳은 시간역행군의 역사 개편 대상이 될 일반적인 출진지가 아니었지만,
향후 개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시대인지 어떤지를 조사하기 위해 야만바기리 부대가 파견된 것이었다.
그 조사지에서, 있을 리 없는 시간역행군의 기습을 만난 도검남사들.
역사개변의 대상이 아닌 시대에, 어째서 시간역행군이 있었던 것인가?
부상당한 호네바미를 데리고 버려진 사냥꾼 움막으로 몸을 피한 도검남사들은 혼란과 경험 부족으로 통솔이 흐트러지게 된다.

순찰에 나선 야만바기리와 야마부시는, 거기서 오다와라 정벌에 참전 중이던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와 나가마사長政 부자와 만나게 된다.

정체를 의심당한 야만바기리, 야마부시, 도타누키는 칸베에에 의해 쿠로다의 진지로 데려가지게 된다.
또한 하세베, 사요, 호네바미는 산중에서 목격한 시간역행군의 뒤를 추적한다. 추적한 끝에 도착한 것은 쿠로다의 진지였다.

시간역행군은 어째서 쿠로다의 진지 근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도스테 제 3탄. 타이틀의 「세 개의 별(삼형제별)三つら星」이란, 오리온좌의 세 개의 이어지는 별을 말한다. 작중에서는 하늘에 빛나는 세 개의 별-삼영걸이라 불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시사하면서, 어떤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오다와라 원정 및 쿠로다 가문을 소재로 한 이야기.
예전 「허전虚伝」에서 야만바기리가 이야기한 「혼마루 초기에 일어난 사건」부터 시작된다.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
구로다 요시타카(일본어: 黒田孝高, 1546년 12월 22일 ~ 1604년 4월 19일)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다. 부젠 국 나카쓰 성주였다. 간베에(官兵衛かんべえ)란 이름으로 많이 불렸다. 출가 후에는 조스이(如水じょすい)란 호(號)을 사용하여 유명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측근으로 모략과 다른 다이묘 등과의 교섭에서 활약했다. 돈 시메온(Don Simeon)이란 세례명을 갖고 있는 천주교도 다이묘이기도 하다.
https://ko.m.wikipedia.org/wiki/구로다_요시타카
https://ko.m.wikipedia.org/wiki/구로다_나가마사
-냉철한 책사 아버지와 좀 띨하지만 쾌활한 아들램의 구도

 

🌃舞台『刀剣乱舞』~悲伝 結いの目の不如帰~
무대 「도검난무」 ~비전 매듭의 불여귀(두견새)~

http://www.marv.jp/special/toukenranbu_5/

★2018년 6월~7월 : 도쿄, 교토, 후쿠오카, 키타큐슈

시놉시스
혼마루에도, 지금은 많은 동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어느 날, 永禄八年(1565년) 에이로쿠의 변永禄の変으로 출진한 도검남사들.
전국시대의 세상에서는,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제 13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가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重・마츠나가 히사미치松永久通들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한편, 도검남사들의 역사를 지키는 싸움은 격화의 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거듭되는 출진.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혼마루의 동료도 늘었다고는 하지만, 도검남사들의 피로의 기색은 짙어져가고 있었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어떤 출진지에서, <정체불명의 적>과 만난다.
그것은 모든 시대에 나타나, 마치 도검남사와 대등하게 싸울 힘을 얻기 위해 경험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요시테루 님을......죽게 두지 않아……」

그 적과 대치한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취한 행동이란―――――――

도스테 제 4탄. 무대 「도검난무」시리즈의 집대성. 대단원.
전국 3도시 4회장에서의 공연에 더해, 1873년 이래 1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쿄 메이지좌에서 특별 공연이 상연되었다.(가고싶었따)
2018년 5월 31일, 6월 1일 이틀간, TOKYO DOME CITY HALL에서 「허전虚伝」「의전義伝」「외전外伝」「서전ジョ伝」의 상영회가 개최되었다. 게스트로 일부 배우가 등단하였으며, 6월 2일에는 메이지좌 특별 공연의 라이브 중계가 동일 회장에서 실시되었다.(여긴 갔따)

2018년 6월 18일에 발생한 지진의 영향으로 교통기관에 지연이 발생하여, 회장에 입장하지 못한 관객을 대상으로 환불이 진행되었다.
또한 7월 6일, 호우의 영향으로 교통기관이 정지되어 회장을 포함한 지역에 피난 권고가 발령. 이로 인해 낮밤 공연을 중지하고, 바로 환불 대응이 발표되었다.
마지막 공연은 7월 29일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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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로쿠의 변(일본어: 永禄の変)은 에이로쿠 8년 5월 19일(1565년 6월 17일), 미요시 산닌슈(三好三人衆)[1]와 마쓰나가 히사히데가 군사를 이끌고 무로마치 막부 제 13대 쇼군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머무르고 있던 교토의 니조 어소(二条御所)를 습격하여 쇼군 요시테루를 암살한 사건이다.
참조: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7%90%EC%9D%B4%EB%A1%9C%EC%BF%A0%EC%9D%98_%EB%B3%80


마쓰나가 히사히데와 미요시 산닌슈는 쇼군 요시테루를 폐하고 요시테루의 사촌동생 아시카가 요시히데(足利義栄)를 쇼군으로 옹립하려고 획책하여, 에이로쿠 8년(1565년) 5월 19일 오전 8시경, 군세를 이끌고 요시테루가 머물고 있던 니조 어소를 포위 공격하였다. 요시테루 측은 사전에 관을 개축하는 등 미요시 가문의 습격에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으나, 어차피 중과부적이었다. 쇼군의 근시들은 미요시 군의 공격에 대해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선전하였으나, 정오 경에는 요시테루가 전사하고 요시테루의 생모 게이주인(慶寿院, 간파쿠 고노에 히사미치(近衛尚通)의 딸로 제 12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足利義晴)의 정실)도 순사하였다. 검호 쓰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을 사사한 요시테루는 칼 솜씨가 좋아서, 이 때 직접 칼을 잡고 무서운 기세로 적들을 베어내며 분투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쇼군 암살 사건으로 쇼군의 권위는 다시 현저하게 실추되었다.